책소개
소련 밖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으로 미국에 이민 간 마루샤가 문화 이질감, 결혼 등의 사안을 겪어 나가는 이야기다. 러시아 이민자들의 생활을 나타내는 만화경으로, 웃음 속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적과 상관없이 이민자들이 가지는 삶과 희망을 보여 준다.
박진감 넘치는 내러티브, 역사적 현실에 기초한 유머와 아이러니는 이 작품을 도블라토프의 대표작으로 만들기에 가히 손색이 없게 한다.
러시아 제3세대 이민 문학 작가
러시아 작가들이 이민을 선택한 것은 정치 체제가 변하면서 문학의 풍토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에 공포를 느껴서거나, 체제의 변화는 없었지만 체제가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강한 압박으로 다가와서였다. 작가의 입장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감내해야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른 타국에 가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특히 모국어 환경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러시아 이민 문학은 크게 세 번에 걸쳐 세대별로 구분한다. 제1세대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과 그에 이은 시민전쟁 시기에 이민한 작가들을 일컫고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또 한 번의 대단위 이민 작가들이 나타났다. 스탈린 사망(1953) 후 잠시 존재했던 소련 문학에서의 ‘해빙기’ 후 1963년에 러시아의 한 신문에 이오시프 브롯스키(1940∼1996,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가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주제로 고발된 것을 시작으로 소위 ‘재결빙기’가 도래했다. 브롯스키는 1972년 정신 병동이나 수용소를 선택할 것인가 혹은 이민을 선택할 것인가로 정부의 압력을 받았다. 이는 강요된 이민이었다. 이것이 제3세대 이민 문학의 시초다. 제3세대 이민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에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속한다. 그는 1976년 소련 기자협회에서 제명을 당하고 1978년에 미국에 정착했다. 제3세대 이민 문학은 유태인들이 많았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며 이들은 러시아 전통 문학의 계승 및 새로움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따라서 제3세대 이민 작가들이 구축한 문학 세계는 대단히 다양한 것이 그 특징이다.
작품 소개
≪외국 여자≫에서 “미국에 사는 러시아 여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마루샤다. ‘실수로’ 러시아에서 뉴욕의 포레스트 힐스로 이민 왔으며 아이가 있는 이 여인의 실패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성공적인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마루샤의 실수는, 그녀의 이민 결심이 다른 이민자들처럼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련 밖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마루샤는 이민 오기 전에 세 번 결혼을 했다. 이 작품은 결혼 생활에 실패한 마루샤가 어떻게 라파엘 호세 벨린다 치코릴리오 곤잘레스와 네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는가의 경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에 살고 있는 러시아 이민자들의 삶을 상세하고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108번가에 모여 살고 있는 러시아 이민자들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이 소련에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것과 이민 후 뉴욕에서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이들은 미국의 기준으로 하층민의 삶을 살아가지만, 소련에서보다는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어 아이러니가 생긴다.
≪외국 여자≫는 1985년에 미국 뉴욕에서 집필되고 1986년에 출판되었으며 1991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도블라토프는 그의 조국 소련에서 출판하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단 한 편의 작품도 그럴 수 없었다. 1978년 미국으로 망명을 한 후로 출판을 왕성히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뉴욕에 살았던 12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다. ≪외국 여자≫를 같은 해에 출판된 ≪이민 가방≫과 함께 도블라토프의 대표작으로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도블라토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실명으로 작품에 등장함으로써 사실성을 고양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시학적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단순하고 명료하며 일상의 대화를 옮겨 놓은 듯한 어조로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처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도블라토프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도블라토프의 문학 세계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으며 다른 작품과의 변별적 자질인 러시아인들의 미국 이민 생활을 사실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지적 유희일 것이다.
작품의 특징
-이름:
러시아 인명은 고유한 이름, 아버지의 이름에서 파생한 부칭(父稱), 한 가문이 공유하는 성(姓)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에는 애칭이 여럿 있을 수 있다. 즉 애칭은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나 가족 사이 혹은 부부 사이에서 쓰이는데, 그 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편 이름과 부칭을 같이 쓰면 ‘존경’의 의미가 부여된다. 또 예컨대 군대에서 호명을 하거나 관공서에서 다른 사람과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서 이름, 부칭, 성을 모두 쓸 때도 있다. 따라서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도 인명의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불리는가가 그 인간관계를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래어 사용:
도블라토프는 이 작품의 제목 “외국 여자”가 시사하듯이 이국적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즉 독자들은 외국의 등장인물 이름과 정부 기관명 등에서 생소함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데, 그 기본적인 내러티브 기법은 외래어 사용에 있다. 이러한 기법은 몇 가지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중 하나가 쉐보레, 올즈모빌, 임팔라 등의 미국산 자동차 이름이다. 또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포레스트 힐스, 블로업 레스토랑, 퀸스, 애머스트, 그 밖에 거리 이름 등이다. 그다음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영어 표현들로 칩스(Chips), 오케이(Okay), 크레이지(Crazy), 택스 디덕터블(Tax Deductable), 앰트랙(Amtrack), 개라지 세일(Garage Sale) 등은 러시아어로 전사(轉寫)되어 사용되고 있다.
-언어유희:
도블라토프는 이 작품의 말미에서 “러시아 알파벳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신에게 감사한다”라고 했다. 예를 들면 마루샤와 출판가 자레츠키의 대화에서 자레츠키가 “자위(masturbation)”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마루샤는 “월경(menstruation)”으로 알아들음으로써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대화의 차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동일한 기법으로 마루샤는 “처녀성 잃기(defloration)”를 “세관 신고서(declaration)”로 알아듣고, “스핑크스(Sphinx)”를 “불결함(stinks)”으로 알아듣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 역시 언어유희의 극치를 보여 준다.
200자평
러시아 제3세대 이민 문학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소설. 소련 밖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으로 미국에 이민 간 마루샤가 문화 이질감, 결혼 등의 사안을 겪어 나가는 이야기다. 러시아 이민자들의 생활을 나타내는 만화경으로, 웃음 속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적과 상관없이 이민자들이 가지는 삶과 희망을 보여 준다.
지은이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한 후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1990년 죽은 후에야 “동시대 작가들 중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을 받았다. 1989년 러시아에서 도블라토프의 작품 출판이 허락된 후부터 그는 러시아에서 거의 개인숭배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인기를 누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가 이민 이전의 지하문학에서 누렸던 인기와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당국의 분노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1986년 그는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로 미국 PEN클럽 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대표 문학지 ≪뉴요커(The NewYorker)≫에 작품을 실은 몇 안 되는 러시아 출신 작가였다. 도블라토프가 생을 보낸 지역은 크게 세 곳이다. 첫째는 그가 태어나 3년을 살았던 러시아 우랄산맥 서쪽의 우파다. 두 번째 장소는 그가 성장하고 학교를 다녔고 이민을 가기 전인 1979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세 번째 장소는 그가 이민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미국의 뉴욕이다. 도블라토프는 1960년대, 즉 군 복무 시절(1962∼1965)에 작가가 되기 위한 시도를 했다. 군 복무 시절 아버지에게 보낸 방대한 편지는 대부분 자작시와 시작법에 대한 토론에 관한 내용이었고 아버지의 의견과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중 <코마에 있는 레닌그라드 사람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오로지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고 싶어/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살아남는 거야/ 찌르는 단검 아래 스스로를 배반하고 싶지 않아.” 수용소의 감시병으로 복무하던 도블라토프의 경험은 그의 소설 ≪수용소(Зона: Записки надзирателя)≫에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데, 위의 시에서 보이는 수인(囚人)의 감시자 공격 모티프 역시 동일 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도블라토프의 대표작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책(Невидимая книга)≫은 1975년에 레닌그라드에서 집필되었고 1977년에 서방에서, 1979년에 “The Invisible Book”이라는 제목으로 영역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도블라토프가 소련에서 문학작품을 출판하려고 노력한 경험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편지, 선언문, 공식적인 문서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이는 묘사되고 있는 사건의 부조리함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타협(Компромисс)≫은 두 번째로 영역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에 바탕하고 있으며 작가와 동명의 도블라토프라는 기자가 쓴 열두 개의 기사와 그 기사가 어떻게 ‘타협’을 하게 되는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도블라토프는 실제 경험을 예술적 재해석과 융합시키고 있는데 이 기법은 리디야 긴즈베르크가 제창한 “제2의 현실”을 창조한다. 또한 작가는 소련 사회의 부조리함, 허구, 더러움, 관료주의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있으며 개인적 차원에서의 온당치 못한 삶, 알코올중독, 적절치 못한 섹스 등을 적나라하게 수면 위로 떠올리고 있다. ≪수용소≫는 작가가 군 복무 중 수용소 감시자로서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도블라토프는 이 작품에서 수인들이 생활하는 수용소의 내부와 이들을 감시하는 수용소 밖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다. 수인과 감시인들의 공통점은 생활 언어, 사고방식, 민속, 예술적 기준, 도덕적 기준 등이다. 따라서 수인은 희생자고 정권은 부정적인 힘이라는 공식과 수감된 자는 악한이고 정권은 그것을 징벌하는 힘이라는 다른 측면에서의 공식 모두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삶의 진실 된 모습을 보았던 도블라토프의 성찰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브롯스키 외에도(Не только Бродский)≫는 당대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논픽션이다. ≪우리들의(Наши)≫은 자신의 조부, 부모님, 아저씨와 아주머니,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식 세대까지 다루는 일종의 가족사다. 논의된 작품 외에도 도블라토프를 빛나게 해 주는 작품으로 ≪보존지구(Заповедник)≫, ≪분소(Филиал)≫, ≪작가 일기(Записные книги)≫가 있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슬라브어문학 석사와 러시아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2년부터 단국대학교에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2012년 현재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 수용소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사망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학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해 보고자 하는 학문적 열망의 결과로 러시아 수용소 문학과 사망학을 연구하고 있다. ≪러시아 시 I≫(2009, 단국대학교 출판부)과 ≪알렉산드르 세르계예비치 푸시킨 詩≫(2010, 단국대학교 출판부)를 출판해 한국에서의 러시아 시 연구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 작품 완역 작업에 참여해, 그의 3대 대표작 중 하나인 ≪부활≫(2008, 작가정신)을 번역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08번가
훌륭한 가정의 소녀
난파된 후
탤런트와 흠모하는 자들
같은 사람들에 곤잘레스를 더해서
대화
길거리 그리고 집에서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
작전 “노래”
앵무새를 잡아라!
해피엔드
실제 살아 있는 작가가 마리야 타타로비치에게 보내는 편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마루샤는 생각에 잠겼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볼셰비키에게 강간을 당한 러시아 그 자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서구화되어 버린 이민 여성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누구일까?
2.
“애는 어디 있어? 정원에?”
“곧 다 설명할게.”
마루샤는 이미 일어서고 있었다.
“료부시카는 어디 있어?”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정상이야.”
라파는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놓았다. 내 등 뒤로 숨더니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아.”
“뭐라고?”
“아이가 차에서 떨어진 것 같아. 제발이지 걱정하지 마.”
3.
“왜 사람들 중에 명랑한 사람들보다는 우울한 사람들이 더 많지요?”
로기노프가 대답했다.
“우울한 척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지요.”